각 작품마다 간단한 후기와 인상깊은 구절을 기록했다.
매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다행히 올해까지 벌써 (아마) 3권 읽은 것 같다.
점점 (내가 이 책을 읽을수록 또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아직은 내가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의 의미와 담고자 하는 사회 면모들을 작가노트와 해설이 설명해주기 때문에 이 책을 매년 읽게 된다. 언젠간 혼자서도 소설안에서 사회의 모습을 직시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1. 대상, 김멜라 - 이응 이응
작가노트 | 소설이 굴러가는 길
해설 | 전승민 몸짓의 진화
<후기>
김멜라 작가님의 이야기는 늘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준다.
소설만 읽으면 생소하고 또는 난해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작가노트와 해설을 통해 김멜라 작가의 세계관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는 것 같다. 미래에 조금 더 성숙해진 내가 21, 22, 23, 24년 젊은작가상 속 김멜라 작가님의 이야기들을
모아서 읽고, 더 깊이 이해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작가노트>
p.51
... 만약 미래의 어떤 기술이 우리의 삶을 좀더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건 우리로 하여금 그 기술이 탄생하기 이전의 삶을 다시 한 번 더 충실히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술이란 본질적으로 우리가 느끼고 이해하는 정보를 배열하는 방식인데, 그 정보란 것이 인간에겐 뇌에 입력된 과거의 기억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니까 미래의 신기술은 우리의 지난 살을 위해, 우리를 다시금 어린아이로 돌려보내 또 한번 배우고 자라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p53.
... 그 기억을 따라 저는 넘어지고 발을 헛디디며 틈과 오류로 가득한 '이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기억은 'ㅇ'이란 글자의 생김새처럼 저를 지나쳐 또다른 곳으로 굴러갑니다. 부디 이 소설이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구 굴러가 자신만의 이응을 그려내는 누군가에게 잘 썩은 낙엽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이 등 돌리고 선 듯한 절망에 빠진다고 해도, 그 이응 안에서 자기 자신만은 스스로를 꽉 안아주면 좋겠습니다.
2. 공현진 -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
작가노트 | 갑자기 열리고 골몰히 닫히는 세계
해설 | 이소 그러므로 갈 수 있는 만큼 가보려 합니다
<후기>
양가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지만, 보통의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하는 이상한 세계. 현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호'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직시하며 건네는 "괜찮으세요?"라는 말이 생각보다 깊은 여운을 남긴다. 중요한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그 다섯 글자가 꽤 아프다.
p.98
물이 흔들리고 물이 휜다. 딱 그만큼 몸이 흔들리고 몸이 휜다.
<해설>
p.109
... 화를 쏟아내는 강사에게 주호는 주저하지 않고 묻는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주호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도 유일한 현실이라는 듯이, 눈앞의 광경을 계산없이 바라보고 정확하게 반응한다.
당신은 주호처럼 무거운 짐을 끄는 행인이나 넘어진 어린아이를 향해 망설이지 않고 달려갈 수 있나.
왜 나는 낯선 이를 걱정하고 돕고 싶은 마음을, 어떠한 악의나 의도 따위 품지 않은 내 마음을 숨기고 누르며 살아왔을ㅇ까. 만약 그것이 여러 갈래로 찢겨버린 현실들의 방정식에서 산출된 보잘것없는 결과라면, 당장 우리에게는 하나의 현실에 집중하고 반응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3. 김기태 - 보편 교양
작가노트 | 보편적인 메모
해설 | 박서양 이토록 달콤한 멜랑콜리
<후기>
멜랑콜리에 대해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진심으로 사력을 다하는 '선생님' 이 있음에 부러웠지만, 나 역시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수업을 선택하지 않았을 모습을 되돌아보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은재' 가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던 것은,
입시 방법에 있어 컨설턴트의 영향이 있었을지라도, 단초를 제공한 것은 '곽'의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곽'은 입시 컨설턴트의 존재에 씁쓸해하지만 사실은, 재료를 준비해준 것은 '곽'의 수업이며, 컨설턴트는 단지 그 재료를 합격이라는 요리를 위해 버무렸을 뿐이라고 작은 위로를 건넨다. '곽'의 수업은 '은재'에게 관심 분야의 지평을 열어 주고 진정한 교육을 알려주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p. 139
경박한 단맛이 아니라 깊이가 있고 구조가 있는, 하지만 묘사해보라고 하면 이미 여운만 남기고 사라져서 어쩐지 조금 외로워지는 달콤함. 사람을 전혀 파괴하지 않고도 패배시킬 수 있는 달콤함.
<해설>
p.146-147
은재에게 선물받은 디저트인 유럽식 고급 제과를 맛본 졸업식의 날의 한가로운 교실 안에서 그는 짙은 상실감을 느낀다.
.. 그의 이상이 좌절된 자리로 되돌아온다. 여기에는 자신의 이상을 좌절하게 만든 현실에 슬픔을 느끼면서도, 다시 그 현실적 조건 속에서 발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양가적인 존재의 멜랑콜리함이 있다.
...* 슬픔의 과정을 계속 되풀이하는 멜랑콜리의 상태..
4. 김남숙 - 파주
작가노트 | 그런 사람
해설 | 최다영 허무에 매겨진 보상 청구서
<후기>
'정호' 무거운 죄질을 알았음에도 헤어지지 않고 살아가는 '윤정'이 이해가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당장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냥 살아가는 현실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적당히 눈을 감고 살아가며 필요한 것들을 취하는 그런 세상이니까.
하지만 '현철'의 짧은 복수 또는 현철이 세상을 당당히 마주하는 과정을 지켜본 '윤정'이 현철의 습관을 닮아가는 것은, 앞으로 나아간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시시해서' 죽어가지 않도록, 존엄을 세워가는 자기만의 방식을 찾는 그 길을 응원한다. 더불어 '현철' 역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밝은 햇빛을 향해 걸어나가는 길을 응원하겠다.
그리고 인물들에게 언뜻보기에 불행만 보이는 삶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남몰래 열어놓은 작가님은 사실 더 강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설>
p. 195
어쩌면 작중에서 빈번히 언급되는 '시시함'이란 실상 '불쌍함'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p.196
현철은 자기 자신을 위해 공포를 무릅쓰고 트라우마와 맞선 경험을 얻음으로써 최소한의 자기 존엄은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5. 김지연 - 반려빚
작가노트 | 운칠기삼
해설 | 전청림 망한 삶의 천재
<후기>
"연어를 좋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좋아했다면 당연히 사고 싶어졌을 텐데 그러면 동시에 자신의 통장 잔고를 헤아리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까" 이 글의 초반 묘사는 우리네 같았다.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삶. 글자로 내 모습을 만나니 헛웃음이 지어졌다. 생각해보니 나도 전세대출로 반려빚과 함께 살고 있더라고.
초등학생의 "왜 반이나 줘요?"라는 한마디는 나에게도 멍한 기분을 안겨다 주었다.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 와중에도 갑자기 이혼과 함께 큰 돈을 갚은 '서일'의 서사가 별탈없이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고, 보다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기를 어렵지만 바래본다.
<해설>
p.238
쾌락을 얻지 못하는 무능이 아니라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쾌락뿐이라는 무능이다. 기만적인 쾌락이 정치를 대체하고 마는 이 상실에는 어떤 우울증적 고갈, 즉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불모가 숨어 있다. 레드콤보 한 마리의 화끈한 맛, 유튜브와 왓챠 등 OTT의 짜릿한 콘텐츠와 영구적인 릴스의 미로 속에서 우리의 패배감과 무기력은 짧고 강렬한 경험에 밀려 무한히 지연된다.이러한 즉각적인 감정 세탁이 끊기지 않고 제공된다는 것이야말로 '도파민 제국'의 자랑이다.
p.239
정현이 두고두고 불쾌해하는 것은 자신의 목줄을 반려빚이 쥐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반려빚 탓에 꿈에서조차 마시지 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어찌 보면 정현은 의존도 하고 조율도 하며 반려빚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p.244
이 초등학생의 날카로운 질문 탓에 정현의 희망은 미래 세대를 향한 일말의 책임도 고민도 없는 무정치적인 요행이라고 가격당한다. ... 이제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망했다'는 감정과 기분을 어떻게 정치적 무대로 올려놓을 것인지,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무기력을 어떻게 자원화하여 사회적 문제로 되새겨볼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6. 성해나 - 혼모노
작가노트 | 케세라세라(Qué será, será)
해설 | 성현아 반항하는 자는 부조리가 있나니, 그 가짜가 참되도다
<후기>
이 이야기는 무속인의 탈을 썼을 뿐, 우리의 현실, 미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나이가 들고, 한순간 재능을 잃으면서 만나는 현실. 그렇다면 그 순간 어떤게 진짜이고 가짜인지. 가짜인 진짠지, 진짜인 가짜인지.
평소 '재능'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는 나로서는 생각해본 적 없던 미래였다. 나에게는 '재능'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나도 언젠간 나이가 들고, 지금 내가 재능이라 생각하지 않는 어떠한 형태의 재능을 어느 순간 잃게 될 텐데. 그럼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혼모노> 작품은 나에게 그런 미래를 생각해보게 만들어주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진짜와 가짜는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고 가짜일까?
여기에 덧붙여 해설의 '알베르 카뮈'의 삶의 태도 이야기가 잠시 나를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맞는 말인 것도 같고, 이해한 것도 같은데 잘 모르겠는 그 철학적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읽어보고자 한다.
<해설>
p290
혼모노(진짜)-니세모노(가짜), 생화-지화, 진짜 보이차-가품, 바나나우유-바나나맛 우유, 작두-모형 작두, 접신-유튜블르 보고 따라 하는 접신 흉내와 같이 진짜-가짜의 여러 구별을 통해 '가짜'의 볼품없음과, 가짜로 판명 난 이가 떠안게 되는 수치심, 진짜를 향한 지박을 끊임없이 제시하던 소설은 "진짜 가짜"라는 역설적이고 혼종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기준이 과연 유효한지 물으며, 그 구분 자체를 회의하게 만든다.
p291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 신애기가 문수를 비꼬며 말할 때, '흉내'는 신이 깃든 척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그러나 이후 문수의 말로 전유될 때, 문수를 조롱하던 말은 신의 꼭두각시이기를 자처하는 신애기와 그 굿판에 매인 존재들을 모두 조소한는 비판의 말로 탈바꿈한다. 문수는 세간의 기준에서 '가짜'이지만, 자기 기준을 확립한 한 인간의 내적 기준 안에서 '진짜'가 된다.
p.292
알베르 카뮈의 삶의 태도에 대한 논지...
이제 당신도 알겠는가, 이 참된 가짜를. 아니, 거짓되다 손가락질 받는 진짜를.
7. 전지영 - 언캐니 밸리
작가노트 | 가까스로 할 수 있는 말
해설 | 김건형 시선과 수치심, 권력과 아름다움
<후기>
불쾌함의 골짜기.
sns와 택시로 스토킹을 한 장애를 가진 남성, 그를 학대한 어머니, 본인을 김승민이라 소개하고 염산테러를 당한 여성, 그 여성이 향하던 청한동 꼭대기 노부부의 집,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내려다보는 노부인, 그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리고 알 수 없는 결말까지.
보통 나는 이런 알 수 없는 결말의 이야기가 좋아하지 않지만, 언캐니 밸리는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뒷 이야기를 끈질기게 상상하게 만든다.
<해설>
p.331
<언캐니 밸리>는 본다는 행위의 권력, 시선의 대상이 되는 순간에 달라붙는 끈적끈적한 감정을 끈질기게 붙잡는 이야기이다.
p. 335
잘 만든 스릴러는 인간 내면의 공포가 어디에서 출발해야하는지를 비춰준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언캐니밸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규범과 폭력적 소유욕, 열등감과 질투심을 집약한 고전적인 스릴러의 형식을 따르면서 이를 한국적으로 패러디하고 있는 셈이다. 불쾌하고 기괴한 이 골짜기를 감히 들여다볼 때, 우리는 무엇을 맞닥뜨리게 될까. 당신은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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